매일 페트병에 1전 2전… 야채가게 사장 9년의 기부 2023-01-250 09:23
금천구 ‘룡현채소’ 김재우 사장, 2014년부터 매년 이웃돕기
금천구 ‘룡현채소’ 김재우 사장, 2014년부터 매년 이웃돕기
금천구의 은행 나무 시장에서 “료은효은 야채”를 운영하는 김·재우 씨.연합 뉴스”이곳 주민들 덕에 먹고 살아 왔어요.그럼 나도 불우 이웃을 위해서 나누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서울 금천구의 은행 나무 시장의 야채 가게 『 료은효은 야채 』을 경영하는 김 재 우 양의(62)는 지난해 말 시흥 5동 주민 센터를 찾아 9번째의 기부를 했다.김 씨는 2014년 주민 센터에 기부금을 내면서 9년째가 됐다.그의 기부에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매일 처음의 손님과 마지막 손님으로부터 얻은 매출액을 생수 병에 모으지만 이 돈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꺼내고 사용하지 않는다.”어느 해, 모인 돈을 기부하러 가면 차에 기름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그래도 나누려고 모은 돈을 쓰지 못했어요.아내에게 카드를 빌려서 해결했어요.”지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일상처럼 됐지만 그도 역시 어려운 시기를 체험했다고 한다.영등포에서 태어난 김 씨는 5세경 금천구 시흥동 판잣집으로 이사 와서 시흥동에 정착했다.학교에 다니면서 부모님의 야채 가게의 심부름을 하고 있던 김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밀가루 장사에서부터 그릇 장사, 김치 장사, 당구장까지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오랜 고생 끝에 이전보다 형편이 좋아지고 어느새 시흥동 은행 시장의 초석이 됐다.장사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 시흥동의 가난한 이웃에 눈을 돌렸다.어려웠던 어린 시절 시흥동 주민에게서 받은 도움을 갚겠다는 욕심에서였다.2010년대 초부터 조금씩 기부의 시작, 2014년부터 시흥 5동 주민 센터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매년 동네 사정이 어려운 주민을 주민 센터로 부르며 자장면과 설렁탕 등을 대접했다.상봉 행사가 여의치 않을 때는 주민 센터에 돈이나 물품을 전달했다.COVID-19가 맹위를 떨친 2020년 7월에는 여름 이불 세트 10채를 기부하고 지난 달 28일에는 90만 3480원을 기부했다.나눔을 하는데 돈이 모자라면 직접 돈을 덧붙였다.2014년, 배추 김치 500주를 기부할 때는 재료를 사서 봉사 활동에 먹는 음식까지 준비하느라 생수 한통의 낮은 금액의 3배를 넘는 돈이 걸렸다.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면 김 씨의 아내는 “계속 기부를 하는가”와 신중하게 물었다고 한다.”10년간만 기부하고 보려고 아내를 설득했어요.” 그렇게 하고 약속한 10년이 왔다.김 씨는 올해도 변함 없이 불입하고 이웃을 구하고 있다.하지만”10년 만”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공산이 크다.”장사를 그만두까지는 꾸준히 저금하고 나누겠습니다.지금은 아내도 묵묵히 도와주고 있습니다.앞으로 힘 닿는 대로 나눔을 실천합니다”
금천구 은행나무시장에서 ‘룡현채소’를 운영하는 김재우 씨.연합뉴스 이곳 주민들 덕분에 먹고 살았어요. 그럼 저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눠야 하는 거 아닌가요?서울 금천구 은행시장 채소가게 용현채소를 운영하는 김재우 씨(62)는 지난해 말 시흥5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9번째 기부를 했다.김씨는 2014년 주민센터에 기부금을 전달하기 시작한 지 9년째다.그의 기부에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매일 첫 손님과 마지막 손님에게서 얻은 매출액을 생수병에 모으는데, 이 돈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절대 꺼내 쓰지 않는다.어느 해 모인 돈을 기부하러 갔는데 차에 기름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도 나누기 위해 모은 돈을 쓸 수가 없었어요. 아내에게 카드를 빌려서 해결했어요.지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일상처럼 됐지만 그 역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한다.영등포에서 태어난 김씨는 다섯 살 무렵 금천구 시흥동 판잣집으로 이사와 시흥동에 정착하였다.학교를 다니면서 부모님의 야채가게를 돕던 김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밀가루 장사부터 그릇 장사, 김치 장사, 당구장까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오랜 고생 끝에 예전보다는 살림살이가 나아져 어느덧 시흥동 은행나무시장의 초석이 되었다.장사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시흥동의 어려운 이웃으로 눈을 돌렸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시흥동 주민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갚겠다는 마음에서였다.2010년대 초부터 조금씩 기부를 시작하여 2014년부터 시흥5동 주민센터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해마다 동네 사정이 어려운 주민들을 주민센터로 불러 짜장면 설렁탕 등을 대접했다.대면 행사가 여의치 않을 때는 주민센터에 돈이나 물품을 전달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7월에는 여름 이불 세트 10채를 기부했고 지난달 28일에는 90만3480원을 기부했다.나눔을 하기에 돈이 부족하면 직접 자기 돈을 보탰다.2014년 배추김치 500포기를 기부할 때는 재료를 사서 자원봉사자들에게 먹일 음식까지 준비하다 보니 생수통 저금액의 3배가 넘는 돈이 들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오자 김씨 아내는 “계속 기부를 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고 한다.10년 동안만 기부를 해보자고 아내를 설득했어요.그렇게 약속한 10년이 왔다. 김 씨는 올해도 변함없이 저축해 이웃을 도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만’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장사를 그만둘 때까지는 꾸준히 저축해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은 아내도 묵묵히 돕고 있어요. 앞으로 힘이 닿는 대로 나눔을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금천구 은행나무시장에서 ‘룡현채소’를 운영하는 김재우 씨.연합뉴스 이곳 주민들 덕분에 먹고 살았어요. 그럼 저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눠야 하는 거 아닌가요?서울 금천구 은행시장 채소가게 용현채소를 운영하는 김재우 씨(62)는 지난해 말 시흥5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9번째 기부를 했다.김씨는 2014년 주민센터에 기부금을 전달하기 시작한 지 9년째다.그의 기부에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매일 첫 손님과 마지막 손님에게서 얻은 매출액을 생수병에 모으는데, 이 돈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절대 꺼내 쓰지 않는다.어느 해 모인 돈을 기부하러 갔는데 차에 기름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도 나누기 위해 모은 돈을 쓸 수가 없었어요. 아내에게 카드를 빌려서 해결했어요.지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일상처럼 됐지만 그 역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한다.영등포에서 태어난 김씨는 다섯 살 무렵 금천구 시흥동 판잣집으로 이사와 시흥동에 정착하였다.학교를 다니면서 부모님의 야채가게를 돕던 김 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밀가루 장사부터 그릇 장사, 김치 장사, 당구장까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오랜 고생 끝에 예전보다는 살림살이가 나아져 어느덧 시흥동 은행나무시장의 초석이 되었다.장사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시흥동의 어려운 이웃으로 눈을 돌렸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시흥동 주민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갚겠다는 마음에서였다.2010년대 초부터 조금씩 기부를 시작하여 2014년부터 시흥5동 주민센터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해마다 동네 사정이 어려운 주민들을 주민센터로 불러 짜장면 설렁탕 등을 대접했다.대면 행사가 여의치 않을 때는 주민센터에 돈이나 물품을 전달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7월에는 여름 이불 세트 10채를 기부했고 지난달 28일에는 90만3480원을 기부했다.나눔을 하기에 돈이 부족하면 직접 자기 돈을 보탰다.2014년 배추김치 500포기를 기부할 때는 재료를 사서 자원봉사자들에게 먹일 음식까지 준비하다 보니 생수통 저금액의 3배가 넘는 돈이 들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오자 김씨 아내는 “계속 기부를 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고 한다.10년 동안만 기부를 해보자고 아내를 설득했어요.그렇게 약속한 10년이 왔다. 김 씨는 올해도 변함없이 저축해 이웃을 도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만’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장사를 그만둘 때까지는 꾸준히 저축해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은 아내도 묵묵히 돕고 있어요. 앞으로 힘이 닿는 대로 나눔을 실천해 나가겠습니다.